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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속의 여자

AI AI가 만든 창작 픽션입니다(음성·이미지도 AI 생성). 실제 사건·인물·단체·장소와 무관합니다.

렌즈 속의 여자

민준이 양림동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이른 봄,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삼월 중순이었다. 그는 광주 출신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건축 기록 연구를 하던 그는 근대 도시 경관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곳에 파견되었고, 양림동 근대골목 일대의 건물들을 사진과 도면으로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 골목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제법 들뜬 기분이었다. 서울의 북촌이나 인천의 개항장과는 결이 다른 고요함이 있었고, 벽돌과 돌담이 뒤섞인 골목 특유의 질감이 카메라 파인더 안에서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하숙집은 양림동 언덕 중턱, 펭귄마을 방향으로 오르는 길 바로 옆 골목 안에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이름을 묻지 않아도 스스로 '지 씨 댁'이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방은 작고 오래되었지만 깨끗했다. 창문으로 내다보면 빨간 벽돌 담장과 그 너머로 낡은 기와지붕이 겹쳐 보였다. 민준은 짐을 풀면서 창밖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기왓장 사이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고, 봄비를 머금은 흙냄새가 열린 창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곳에서의 한 달이 꽤 평온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튿날부터 그는 매일 오전 카메라를 메고 골목으로 나갔다. 양림동의 근대골목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과 한옥, 적산 가옥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지형이었다. 선교사들이 세운 낡은 석조 예배당, 한 세기를 버틴 나무 대문, 담장 위로 비죽이 솟은 목련 가지. 그는 기록을 남기며 이 골목이 지닌 시간의 켜를 좋아하게 되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관광객이 주말에 드문드문 찾아올 뿐이었고, 평일 오전의 골목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 고요함이 그에게는 일종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골목 하나를 발견했다. 메인 골목에서 꺾어지는 좁은 돌계단 길이었는데, 양쪽으로 키 높은 돌담이 서 있어서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다가 멈췄다. 골목 안쪽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한 번 눌렀다. 뷰파인더 안에 보이는 것은 돌담과 계단, 그리고 담 위로 삐져나온 마른 등나무 줄기뿐이었다. 그는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확인한 사진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계단 맨 위 쪽, 담장이 끊기는 지점에 희미하게 사람의 윤곽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찍혀 있었다. 빛의 굴절이거나 나뭇가지의 그림자이겠거니 했다.

그 무렵부터 골목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이른 오전에 나가면 전날 닫혀 있던 어떤 목조 건물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비가 온 날 아침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 같은 골목 안에 선명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크기가 이상하게 작았다. 어린아이의 것이라기엔 너무 길쭉하고, 어른의 것이라기엔 너무 좁았다. 민준은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그러다 어느 날 오후 늦게 골목을 걷다가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담장 너머 어딘가에서 났다. 노래인지 중얼거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매우 낮고 단조로운 음이었다. 음정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일정했고,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의미한 반복이었다. 흠흠흠, 흠흠흠. 그런 식으로 이어지다가 딱 끊겼다. 민준은 걸음을 멈추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담은 그의 어깨 높이보다 높아서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노인이 혼자 흥얼거리는 소리일 것이다. 이 골목에는 나이 든 주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숙집 할머니에게 그 소리를 넌지시 언급했을 때, 지 씨 댁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했다. 부정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밥상 위의 반찬 그릇 하나를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저녁 어두워지면 그쪽 골목엔 안 가는 게 좋아요." 어느 쪽 골목인지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수저를 들었다. 민준은 그 침묵을 노인 특유의 과장된 주의라고 받아들였다. 오래된 동네에는 늘 그런 금기가 하나씩 있는 법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민준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렌즈 속의 여자

오후 네 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빛이 노랗게 기울기 시작하면서 돌담에 긴 그림자가 생기던 때였다. 그는 언덕 위쪽, 선교사 묘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낡은 석조 건물의 외벽을 촬영하고 있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그는 열 걸음쯤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였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천의 색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랜 회색빛이었다. 머리카락은 풀어 내려져 있었고 얼굴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여자가 없어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냥 없어졌다. 그가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린 것도 아니었다. 파인더 안에 분명히 있던 것이 그냥 없어졌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느리게 뛰었다. 골목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여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담의 이끼가 오후 햇살을 받아 젖은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확인했다. 대부분 건물 외벽과 담장 사진이었다. 그 여자를 찍으려다 셔터를 누르지 못한 사진, 즉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열었을 때 그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사진에는 골목이 찍혀 있었다. 텅 빈 골목. 여자는 없었다. 그런데 골목 바닥, 돌이 깔린 길 위에 무언가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것 같은 것이었다. 발자국이었다. 그것도 두 발이 나란히 붙어서 멈춰 선 것처럼 찍힌, 선명하게 젖은 발자국. 발자국은 거기서 끝났다. 이어지는 것이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두 발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날 밤 민준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창밖의 기왓지붕을 오래 바라보다가 결국 불을 켜고 그간 촬영한 사진들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백 장 가까운 사진이었다. 대부분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열여섯 번째 사진에서 멈췄다. 사흘째 되던 날 찍은, 지도에 없는 그 돌계단 골목 사진이었다. 그는 이미 한 번 확인했고 담장의 그림자가 사람처럼 보인 것이라고 결론 지었던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담장이 끊기는 지점에 찍힌 그 윤곽.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빛이 그쪽에서 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가 그 방향으로 생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형체의 자세, 고개를 약간 숙이고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서 있는 자세. 그것은 오늘 그가 본 여자와 똑같았다.

그는 더 이전 사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날 찍은 선교사 예배당 외벽 사진. 창문이 세 개 찍혀 있었고, 가운데 창문에는 안쪽이 어둡게 보였다. 민준은 그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보았다. 창 안쪽에 서 있는 형체. 너무 어두워서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무언가. 그는 그 사진을 찍을 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폐건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 사진에도 있었다. 담장 위로 찍힌 먼 배경, 이웃 건물의 지붕 위에 서 있는 형체. 그냥 보면 굴뚝이나 환기 덮개처럼 보이는 것. 그런데 굴뚝은 그런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렌즈 속의 여자

민준은 노트북을 덮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그는 자신이 공포에 약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오래된 건물과 낡은 골목을 직업으로 탐구해 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처음 이 골목에 들어선 날부터 그 여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다음 생각이었다. 그 여자는 그가 자신을 찍으려 할 때마다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무언가를 의미했다. 그것은 그녀가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였다. 그녀는 이미 모든 사진 안에 있었다. 그가 카메라를 들기 전부터, 그가 보지 않을 때부터. 그녀는 그가 찍은 모든 곳에 이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일찍 일어나 지 씨 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부엌에 있었다. 그는 어젯밤 발견한 것들을 설명하려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골목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지 씨 댁은 솥뚜껑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민준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할머니가 말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이 골목이 지금처럼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기 전, 훨씬 전 이야기라고. 이 근처에 혼자 살던 여자가 있었다고. 이름도 없이, 가족도 없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 여자는 매일 골목을 걸었다고 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멈추지 않고. 그러다 어느 날 그냥 사라졌다고. 시신도 찾지 못했고, 어디로 갔는지도 몰랐다고. 그 이후로 이 골목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아직도 걷고 있다고. 멈추지 못하는 것이라고.

"왜 멈추지 못하는 겁니까?" 민준이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누군가 자기를 보면 멈출 수 있는데. 제대로 봐야 해. 눈을 피하지 않고."

민준은 그 말의 의미를 하루 종일 생각했다. 오전에도 골목에 나갔다. 카메라는 들지 않았다. 골목은 평소와 같았다. 봄빛이 돌담 위에 내려앉아 있었고,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골목의 공기가 단순히 오래된 것들의 냄새가 아님을 알았다. 무언가가 계속 걷고 있는 것의 숨결이 섞여 있었다.

오후가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그녀를 보았다.

렌즈 속의 여자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카메라도 들지 않았다. 그냥 서서 바라보았다. 여자는 골목 중간쯤에 서 있었다. 오늘은 더 선명했다. 바랜 회색 치마, 내려진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 이번에는 눈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민준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민준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눈은 무표정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공허했다. 오래 비어 있던 것, 오래 채워지지 못한 것의 공허함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민준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골목을 따라, 언덕 위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소리가 없었다. 민준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퉁이를 돌아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골목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주 조금. 아까보다 봄냄새가 더 진하게 났다. 아까보다 새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민준은 그날 저녁 짐을 쌌다.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고 지 씨 댁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을 나서며 그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은 저녁빛 속에 조용했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광주역으로 향했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문득 노트북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카메라는 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파일이 하나 있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이었다.

그것은 오늘 오후, 그가 여자와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의 골목 사진이었다. 어떻게 찍혔는지 알 수 없었다. 사진에는 골목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골목 중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여자는 없었다. 사진 안에 서 있는 것은 민준 자신이었다. 그가 서 있는 자리에. 바랜 것도 아닌, 선명하게. 그런데 그 자세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두 팔을 몸에 붙이고, 정면을 바라보는 그 자세가.

그는 파일을 닫았다. 택시는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양림동의 지붕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 주에 다시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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