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있어
AI AI가 만든 창작 픽션입니다(음성·이미지도 AI 생성). 실제 사건·인물·단체·장소와 무관합니다.

방천시장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벽화들이 시작된다. 색이 바랜 기타 그림, 웃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표정의 얼굴들, 그리고 가끔 벽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노랫소리. 이 거리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낮에 온다.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고,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돌아간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나는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정확히는 프리랜서 녹음 기술자였는데, 유명한 뮤지션의 앨범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음악 축제나 소규모 공연의 음향을 담당하는 일을 주로 했다. 대구에 내려온 것은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방천시장 일대에서 열리는 음악 프로젝트, 구체적으로는 김광석 거리의 옛 공연 소리들을 수집해서 아카이브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의뢰인은 지역 문화재단이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거리 곳곳에 소형 마이크를 설치해 이틀에 걸쳐 자연음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어렵거나 위험한 작업이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숙소는 거리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첫날 저녁, 장비를 풀어놓고 거리를 한 바퀴 걸어봤다. 관광객들이 빠진 저녁의 김광석 거리는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벽화들이 가로등 빛 아래에서 납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바람이 골목을 통과할 때마다 어딘가에 매달린 작은 종이나 현수막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거리 끝쪽에는 커다란 동상이 서 있었다. 기타를 안고 있는 조각상. 낮에 봤을 때는 그냥 기념물처럼 보였는데,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는 탓인지 저녁에는 그 표정이 달라 보였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의 중간에 멈춰 있는 것 같은 표정.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마이크 설치를 시작했다. 거리 양쪽 벽의 전봇대와 안내판, 그리고 군데군데 놓인 벤치 아래에 총 여덟 개의 소형 마이크를 설치했다. 각각의 마이크는 블루투스로 내 노트북과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소리를 보내주었다. 작업은 오전 중에 끝났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헤드폰을 끼고 여덟 채널을 동시에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의 발소리, 버스킹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 바람 소리.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문제는 오후 세 시쯤 시작되었다.
채널 삼번, 그러니까 거리 중간쯤에 있는 벽화 앞 벤치 아래에 설치한 마이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버스킹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거리에는 늘 버스킹 공연이 있었고, 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뭔가 달랐다. 일반적인 버스킹 소리는 주변 소음과 섞이기 마련인데, 이 기타 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를 밀어내듯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다른 채널들에는 이 소리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직접 거리로 나가봤다. 벤치 근처에 서서 귀를 기울였지만, 버스킹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당시 거리에는 버스킹 공연이 없었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 다시 헤드폰을 끼자, 채널 삼번에서는 여전히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녹음 파일을 돌려서 소리의 패턴을 분석했다. 기타 코드는 단순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마치 어떤 노래의 전주를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같은 자리에서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또 멈추고.

나는 장비 오작동이라고 결론 내렸다. 마이크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어딘가에서 신호가 유입되고 있거나. 나는 채널 삼번의 녹음을 별도 파일로 저장해두고 계속 모니터링을 이어갔다. 그날 저녁, 다른 채널들은 점차 조용해졌다. 관광객들이 빠지고, 버스킹 공연도 끝나고, 거리가 잠잠해지면서 대부분의 채널에는 바람 소리와 간헐적인 발소리만 남았다. 그런데 채널 삼번만은 달랐다. 밤이 깊어질수록 기타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에 목소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노래가 아니었다. 그냥 소리였다. 사람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소리. 나는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파형을 분석했다. 소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주파수 분포도 사람의 목소리 범위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떤 단어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막 말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혹은 반대로 말이 막 사라지려는 것처럼, 형태의 직전이나 직후에만 존재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날 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세 시쯤 헤드폰을 벗고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기타 전주,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는 목소리. 나는 그것이 잠을 못 잔 탓에 생긴 환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소리가 없는 방 안에서, 소리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계획을 바꿨다. 원래 이틀 예정이었던 채취 작업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하고, 채널 삼번 마이크 주변을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오전에 벤치로 가서 마이크를 점검했다. 이상은 없었다. 장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옆 벽에는 커다란 벽화가 있었다. 기타를 치는 사람의 옆모습이 그려진 그림인데, 색이 많이 바래서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기타를 내려다보는 각도여서, 얼굴 대신 까만 머리카락만 보였다.
나는 그 벽화를 이전에도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림 속 인물의 손가락이 짚고 있는 기타 코드가, 내가 채널 삼번에서 들은 그 반복되는 코드와 일치했다. 물론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연결일 수 있었다. 잠을 못 자고 이상한 소리에 신경을 쓰다 보면 없는 패턴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숙소로 돌아갔다.
오후부터 다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그날은 처음부터 뭔가 달랐다. 채널 삼번의 기타 소리가 오전부터 들리기 시작했는데, 전날보다 더 또렷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소리도 처음부터 섞여 있었다. 여전히 단어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형태가 조금 더 분명해진 것 같았다. 마치 물속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을 물 위에서 듣는 것처럼, 언어의 윤곽만 느껴지는 소리. 나는 녹음 파일을 여러 차례 되감아 들었다.
그러다가 오후 네 시가 조금 지났을 때, 목소리가 잠깐 선명해지는 구간이 있었다. 단 한 마디였다. 나는 헤드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볼륨을 올려서 다시 들었다. 확실했다.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아주 낮고 지친 목소리로, 마치 오래된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약간 뭉개진 음질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있어."

나는 헤드폰을 벗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다시 헤드폰을 쓰고 파일을 되감았다. 그 구간을 다시 들었다. 소리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아직 있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장비 오작동, 신호 간섭, 다른 소리가 내 뇌에서 언어로 해석된 것. 얼마든지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채널 삼번의 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타 전주가 더 이상 같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반복되던 패턴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될 것 같은 지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멈췄다. 목소리가 들어와야 할 자리, 가사가 시작되어야 할 자리에서, 소리가 끊어졌다. 마치 숨을 들이쉬고 노래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무언가가 막혀버린 것처럼.
나는 밤새 그것을 들었다. 기타가 전주를 연주하고, 노래가 시작될 자리에서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한 번, 두 번, 수십 번. 새벽이 깊어질수록 기타 소리는 더 또렷해졌고, 목소리가 들어와야 할 자리의 침묵은 더 무거워졌다. 그것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가 있으려다 막혀있는 것, 말하려다 말하지 못하는 것의 형태를 한 침묵이었다. 나는 새벽 두 시에 헤드폰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었고, 바람이 없어서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채널 삼번 마이크가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면서 보니, 벽화 앞에 누군가 있었다. 처음에는 관광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 사람은 벽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서 있다기보다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벽화 속 인물과 거의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기타를 안은 것처럼 팔을 모으고.
나는 멈췄다. 거리가 좁아서 벤치까지는 십 미터도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그냥 돌아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그 사람이 움직였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얼굴이 없었다.
아니, 얼굴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얼굴은 있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벽화가 비처럼 쓸려서 형태를 잃은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입이 열려 있었다. 노래를 시작하려는 것처럼, 혹은 오래전에 노래를 시작했지만 아직 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처럼.

나는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과 나 사이에서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나를 뒤로 밀었다. 의지가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돌아서서 숙소를 향해 걸었다. 뛰지 않았다. 뛸 수가 없었다. 걷는 것도 이상했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숙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잠그고,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헤드폰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연결 상태였다. 나는 헤드폰을 보았다. 헤드폰 쪽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작게, 그러나 분명히. 기타 전주.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노래가 시작될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어왔다. 가사가 들렸다. 방 안에 혼자 앉아서 헤드폰도 쓰지 않았는데,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책상 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방 안 어딘가에서, 혹은 방 안 전체에서, 혹은 내 안 어딘가에서.
나는 다음 날 아침 장비를 챙겨서 대구를 떠났다. 의뢰인에게는 작업을 완료했다고 보고했고, 채널 삼번의 녹음 파일도 포함해서 전체 파일을 넘겼다. 의뢰인이 그 파일을 열어볼 것인지, 채널 삼번에서 무엇을 듣게 될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온 지 두 주가 지났다. 작업실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가끔, 녹음 작업을 하다가 헤드폰을 쓰고 파형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채널 하나가 이상해진다. 다른 모든 소리를 밀어내듯 또렷하게, 기타 전주가 들린다. 나는 그럴 때마다 헤드폰을 벗는다. 빠르게,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자연스럽게. 마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그랬다. 헤드폰을 벗고 작업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평범한 서울의 오후였다. 지나가는 사람들, 자동차, 아무것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나는 다시 헤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썼다.
기타 전주는 없었다. 대신 다른 채널에서, 아주 작게,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태를 갖추지 못한 소리, 언어의 윤곽만 느껴지는 소리였다. 나는 볼륨을 올리지 않았다. 파형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그 소리가 들리는 채로, 다른 채널의 작업을 계속했다.
그 소리는 지금도 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