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다보지 마라
AI AI가 만든 창작 픽션입니다(음성·이미지도 AI 생성). 실제 사건·인물·단체·장소와 무관합니다.

민서가 양림동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늦가을 오후였다. 사진을 전공하는 그녀에게 교수가 내준 과제는 단순했다.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골목을 찾아 열 장의 흑백 사진을 찍어 오라는 것. 지도 앱을 열면 양림동 근대골목은 별점이 꽤 높았고, 후기에는 '낭만적인 골목',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라는 말들이 가득했다. 민서는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걸고 버스에서 내렸다. 양림동 입구에 서자 낡은 돌담과 기와가 섞인 지붕들이 늦은 햇살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은행나무 잎이 막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참이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 빨래를 걷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 고양이 한 마리가 돌담 위에 앉아 민서 쪽을 바라보았다. 민서는 카메라를 꺼내 뷰파인더에 눈을 댔다. 이런 곳이라면 과제 열 장쯤은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양림동의 골목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굵은 전신주와 오래된 담벼락이 번갈아 나타났고, 선교사 시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붉은 벽돌이 한옥 처마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이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민서는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이층 창문에 걸린 빛바랜 커튼, 돌계단 사이로 자란 이끼, 담장 위에 줄지어 앉은 기왓장들. 뷰파인더 속 흑백의 세계는 고요하고 단정했다. 그런데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야 민서는 이상한 점 하나를 알아차렸다. 골목 안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입구에서 들리던 빨래 소리도, 고양이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발소리라고는 자신의 것뿐이었고, 그 발소리가 돌담에 반사되어 울릴 때마다 민서는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골목이었다.
민서가 처음으로 그 여자를 본 것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낡은 우물 옆에서였다. 우물은 콘크리트 덮개가 씌워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검은 한복을 입은 노파가 앉아 있었다. 등이 굽어 있었고 양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로 민서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서는 멈춰 서서 목례를 했다. 노파는 반응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민서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렸다. 허락도 받지 않고 사람을 찍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려는 순간 골목 모퉁이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왔고, 은행나무 잎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잎들이 시야를 잠시 가렸다가 걷혔을 때 의자는 비어 있었다. 노파는 없었다. 민서는 의자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골목은 막다른 곳이었다.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빠르게 일어나 들어간 것이겠지, 하고 민서는 생각했다. 근처에 낡은 목조 주택이 한 채 있었고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노파가 그 집에 사는 주민이었을 것이다. 민서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해가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빛이 좋을 때 나머지 사진을 다 채워야 했다. 그녀는 우물 쪽으로 렌즈를 향했다. 뷰파인더 속에서 우물은 고즈넉하고 낡아 평범해 보였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민서는 멈칫했다. 뷰파인더 속, 우물 옆 나무 의자 위에 무언가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비어 있던 의자였다. 카메라를 내리고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의자는 비어 있었다.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댔다. 의자 위에는 분명히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고무신이었다. 오래되어 끝이 닳고 흙이 묻은 흰 고무신. 카메라를 내리면 없고 들면 있었다. 민서는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고시원으로 돌아와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확인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예상대로였다. 담벼락, 기왓장, 이끼 낀 계단. 그런데 우물을 찍은 사진에 민서는 손을 멈추었다. 사진 속 나무 의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무신은 없었다. 하지만 의자 바로 옆, 콘크리트 덮개 위에 뭔가가 찍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림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확대해보니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손이었다. 사람의 손처럼 보이는 형태가 덮개 위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손가락이 다섯 개였고 손목 부분이 덮개 틈새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민서는 사진을 닫고 다시 열기를 세 번 반복했다. 매번 같은 것이 보였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었다.
다음 날 민서는 다시 양림동으로 갔다. 스스로도 왜 다시 가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과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찍은 사진 중 쓸 만한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골목 입구에 서는 순간, 민서는 자신이 우물 쪽으로 걸어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골목은 어제와 같은 모습이었다. 돌담, 전신주, 기와지붕. 어제는 노랗던 은행나무 잎이 오늘은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골목 바닥에 잎들이 쌓여 발소리를 죽였다. 우물 앞에 도착했을 때 나무 의자는 그대로 있었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서는 의자에 손을 올려 보았다. 나무 표면이 차가웠다. 그리고 축축했다. 하늘은 맑았고 이슬이 맺힐 시간도 지났는데 의자는 젖어 있었다. 민서는 손을 뗐다. 손바닥에 묻은 습기를 바지에 닦으며 우물 덮개를 바라보았다. 덮개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덮개 주위 콘크리트 바닥에 무언가 긁힌 자국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글자였다.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가늘고 불규칙한 글자들이 덮개 가장자리를 빙 둘러 새겨져 있었다.

민서는 무릎을 꿇고 글자들을 읽으려 했다. 오래되어 닳은 데다 자국이 가늘어 읽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같은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올려다보지 마라.' 그게 전부였다. 빙 돌아가며 수십 번 반복된 같은 문장. 올려다보지 마라. 민서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보지 말라는 말을 읽고 나서 올려다보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었다. 하늘이 보였다. 흰 구름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물 바로 위, 전신주에서 집으로 연결된 전선 위에 그 노파가 서 있었다. 전선 위에 두 발을 올리고 꼿꼿이 서서 민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굽어 있던 등이 이제는 곧게 펴져 있었다. 검은 한복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그냥 어두웠다. 빛이 닿지 않는 것처럼, 아니면 얼굴 자체가 없는 것처럼.
민서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지를 수가 없었다. 공기가 목에 걸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다리가 굳어 있었다. 눈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았다. 노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민서는 뒷걸음질을 쳤다. 한 발, 두 발.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우물이 사라지자 민서는 돌아서서 뛰었다. 골목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손이 떨렸고 카메라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있었다. 민서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행인들이 지나쳤다.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민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겨우 잠들었다. 꿈에서 그녀는 다시 양림동 골목에 있었다. 꿈속의 골목은 낮이었지만 빛이 이상했다. 색이 없는 빛이었다. 모든 것이 흑백 사진처럼 보였다. 민서는 카메라를 들고 걷고 있었다. 우물 앞에 도착했을 때 의자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이 있었다. 노파는 민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주 보통의 웃음이었다. 주름진 얼굴에 인자한 눈빛. 그런데 그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민서가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노파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눈 깜빡임도 없었다. 미세한 떨림도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민서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와 함께 노파의 웃음이 사라졌다.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리고 노파가 입을 열었다.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입 모양이 분명히 읽혔다. '왜 찍었어.'
민서는 그 꿈 이후로 사진 과제를 포기하기로 했다. 교수에게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카메라는 가방 깊숙이 넣었다. 며칠이 지났다. 일상은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민서는 고시원 방 창문 밖을 보다가 멈추었다. 고시원은 4층이었다. 창밖에는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전선들이 있었다. 그 전선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비둘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형태가 달랐다. 너무 작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민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전선 위에 놓인 것은 낡은 흰 고무신 한 짝이었다. 어떻게 저기 올라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전선이 건물 외벽 가까이 지나가긴 했지만, 손을 뻗어 올려놓으려면 창문 밖으로 몸을 한참 내밀어야 했다. 그리고 민서의 방 창문은 어젯밤부터 잠겨 있었다.
민서는 그날 양림동으로 다시 갔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두려움과 비슷했지만 두려움은 아니었다. 이미 무언가에 연결된 것처럼, 줄이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골목 입구에서 민서는 근처 복지관에서 일한다는 중년 여성을 만났다. 우연히 말이 트여서 민서가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여자는 양림동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다가 문득 표정이 바뀌었다. "그 우물 근처에서 사진 찍으셨어요?" 민서가 그렇다고 하자 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 우물은 오래전에 막아둔 것인데, 예전에 어떤 여자가 거기서 죽었다고 했다. 자세한 건 모른다고 했다. 그냥 동네에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그 여자가 죽기 전에 우물 주위에 뭔가를 새겨두었다고. 뭐라고 새겨두었는지 아냐고 민서가 묻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몰라요. 읽으면 안 된다고 해서."

민서는 그날 우물 앞까지 갔지만 덮개를 보지 않았다. 전선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냥 나무 의자 앞에 서서 오래 있었다. 오후 햇살이 기울면서 골목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민서의 그림자도 길었다. 그런데 그림자를 내려다보다가 민서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자신의 그림자 뒤에 또 다른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민서와 같은 방향으로 길게 뻗은 그림자였는데, 실루엣이 달랐다. 등이 굽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민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민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골목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 오래된 목으로 내뱉는 숨소리 같았다.
민서는 그날 밤 친구 지혜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지혜는 처음에 웃다가 민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진지하게 들었다. 지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굿당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아니면 절이라도. 민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진들을 다시 열었다. 우물을 찍은 사진. 확대하면 덮개 위에 손처럼 보이는 형태가 있는 그것. 민서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다른 것을 발견했다. 덮개 위의 손이 아니었다. 배경, 그러니까 덮개 뒤쪽 우물 옆 벽면에 뭔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벽에 번진 얼룩인 줄 알았다. 계속 보다 보니 형태가 보였다.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주 가늘고 희미하게, 벽에 녹아들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얼굴. 눈은 감겨 있었다. 그 얼굴을 며칠 전 꿈에서 보았다. 인자하게 웃다가 어두워졌던 그 얼굴이었다.
민서는 사진을 삭제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도 한동안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민서는 조금씩 일상을 되찾았다. 수업에 나가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양림동의 일은 서서히 꿈처럼 흐릿해졌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졌다.
그런데 보름쯤 지난 어느 날, 교수가 과제 발표를 하는 수업에서 한 남학생이 양림동에서 찍어 온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남학생도 같은 과제를 위해 거기 갔던 모양이었다. 사진들이 한 장씩 넘어갔다. 돌담, 기왓장, 붉은 벽돌. 민서는 그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찍었던 풍경과 너무 비슷했다. 그런데 마지막 사진에서 민서는 숨을 멈추었다. 마지막 사진은 우물이었다. 남학생이 찍은 그 우물 사진에는 나무 의자가 보였다. 의자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우물 옆 벽면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입을 벌린 얼굴이 있었다.
민서는 손을 들어 그 사진에 대해 물으려다 멈추었다. 남학생은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교수도 사진 구도가 좋다고 칭찬했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민서 혼자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민서만 빼고 모두에게 보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민서는 시선을 스크린에서 거두어 창밖으로 돌렸다. 강의실 창밖으로 전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서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하려 했다.
그런데 강의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민서는 멈추었다. 창유리는 반반사 유리였다. 낮에도 실내가 밝으면 유리에 실내가 비쳤다. 유리에 비친 민서의 뒤에, 마지막 줄 빈자리에, 검은 한복을 입은 형체가 앉아 있었다. 형체는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등이 이제는 굽지 않았다. 곧게 펴진 채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민서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 대신 천천히 앞을 보았다. 스크린에는 우물 사진이 아직 걸려 있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옆자리 친구가 뭔가 필기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민서는 그날 이후로 창유리를 보지 않으려 했다. 유리가 있는 곳에서는 시선을 낮추거나 다른 데로 돌렸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보고 말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보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울 속에는 민서가 있었다. 민서 뒤에는 화장실 벽이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민서는 안도하며 거울에서 눈을 떼려 했다. 그 순간 거울 속 민서의 눈이 깜빡였다. 민서 자신의 눈은 깜빡이지 않았는데.
민서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화장실을 나왔다. 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참 후에 핸드폰을 꺼내 지혜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같이 있어줄 수 있냐고. 지혜의 답장은 금방 왔다. 그래, 왜? 민서는 뭐라고 쓸지 몰라서 잠시 멈추었다가 그냥 '그냥'이라고 보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다가 화면이 꺼지기 직전 잠금화면에 뜬 시간을 보았다. 새벽 두 시 사십칠 분이었다. 그리고 시간 아래쪽, 날짜가 표시되는 자리에, 날짜 대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민서는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다시 화면을 켰다. 날짜가 보였다. 평범한 숫자들. 문장은 없었다.
민서는 그것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에 피곤한 눈으로 보면 그럴 수 있었다. 이불을 다시 끌어올렸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골목이 보였다. 우물이 보였다. 전선이 보였다. 그리고 전선 위에 서서 내려다보던 형체가 보였다. 얼굴이 없던 그것이. 민서는 눈을 다시 떴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하얗고 평범했다. 형광등 불빛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민서는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그것은 뭘 원하는 걸까. 왜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오는 걸까. 아니면 사진을 찍은 것과 관계없이 우물 앞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는 걸까. 그 남학생도 지금 이런 것을 보고 있는 걸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민서는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도 우물도 없었다. 그냥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 민서는 잠이 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방은 평범했다. 햇빛이 들어왔다. 민서는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창밖을 보았다. 전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서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신발장 앞에 서서 신발을 꺼내려다 민서는 멈추었다. 신발장 안에, 자신의 운동화 옆에, 낡은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제는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민서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고무신은 조용히 거기 있었다. 끝이 닳고 흙이 묻어 있었다. 발 모양이 고무신 안쪽에 눌려 있었다. 오래, 아주 오래 신었던 사람의 발 모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