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의 눈
AI AI가 만든 창작 픽션입니다(음성·이미지도 AI 생성). 실제 사건·인물·단체·장소와 무관합니다.

민준이 처음 하회마을에 도착한 것은 늦가을 오후였다. 안동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강변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자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돌며 흐르는 특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물은 은빛으로 번들거렸고, 강 건너편 부용대 절벽은 잿빛 하늘 아래 말없이 서 있었다. 민준은 차창에 이마를 기대고 그 절벽을 바라보았다.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아래 강물이 소리 없이 흘렀고, 절벽의 윤곽이 흐릿한 안개 속에서 마치 거대한 얼굴처럼 보이다가 이내 그냥 바위로 돌아왔다.
민준은 문화재청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는 민속학 연구원이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하회별신굿탈놀이 관련 고문서를 현지 자료관에서 확인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을 채록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예정이었다. 숙소는 마을 안쪽 고택을 개조한 민박집이었는데, 주인 할머니 이씨는 말이 없고 눈이 작은 분이었다. 방을 안내하면서도 뒷모습만 보여주었고, 방문 앞에 서서 그저 "일찍 주무세요"라고만 했다. 민준은 짐을 풀고 창문을 열었다. 마당 끝에 낡은 장독대가 줄지어 있었고, 그 너머로 초가 지붕들이 이어졌다. 바람이 지붕 위를 쓸고 지나갈 때마다 마른 억새가 서걱이는 소리가 났다.
첫날 저녁은 아무 일도 없었다. 민준은 마을 자료관에서 자료 목록을 확인하고, 저녁을 먹은 뒤 마을 안길을 산책했다. 돌담이 이어진 골목은 가로등도 드물었고, 흙바닥에 낙엽이 쌓여 있었다.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마을이 워낙 고즈넉한 탓이려니 했다. 숙소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우니 강물 소리가 들렸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아 흐르는 소리, 물이 모래 위를 쓸어가는 낮고 지속적인 소리가 벽 너머에서 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민준은 잠들었다.
이튿날 오전, 민준은 마을 노인 한 분을 인터뷰했다. 류씨 성을 가진 노인으로, 풍산 류씨 집안의 먼 방손이라고 했다. 칠십 대 중반에 허리가 굽었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탈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눴다. 이무기탈, 각시탈, 양반탈, 백정탈의 순서와 의미에 대해 노인은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러다가 민준이 혹시 마을에 내려오는 다른 이야기, 즉 탈놀이 이외의 구전 설화나 금기에 대한 것을 물었을 때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떤 탈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민준은 그냥 관습적인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역마다 탈에 얽힌 금기나 속신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혹시 그런 것도 있느냐고. 노인은 잠시 마당 쪽을 바라보더니 낮게 말했다.
"탈은 얼굴입니다. 쓰는 사람 얼굴이 아니라, 탈 자체가 얼굴인 거예요. 그러니 탈이 걸려 있는 곳에서는 조심해야 해요. 탈이 보는 방향으로 서지 마라, 예전에 어른들이 그랬어요."
민준은 녹음기를 챙기며 그 말을 흘려들었다. 흥미로운 속신이라고 메모장에 적었다. 탈이 보는 방향으로 서지 마라. 그게 전부였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민준은 자료관 창고에서 오래된 탈 하나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탈이라기보다 탈의 파편이었다. 나무 바닥에 자루를 뒤집어쓴 채 선반 구석에 있었는데, 자루를 들어올리자 아래에 반쪽짜리 탈이 있었다. 나무가 짙게 검어져 있었고, 옻칠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목구비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눈 부분만 선명했는데, 두 눈이 정면을 향해 크게 뚫려 있었다. 자료관 직원에게 이게 무엇인지 묻자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저거요. 오래된 거예요. 어디서 나온 건지는 저도 잘 모르고요. 기증받은 물건들 사이에 섞여 있었나봐요. 따로 분류는 안 됐어요."
민준은 탈을 사진으로 찍고 도면을 그렸다. 나무의 재질과 가공 방식을 보면 최소 백 년은 넘은 것 같았다. 눈 구멍 가장자리에 뭔가 갈색으로 말라붙은 것이 있었는데, 민준은 그게 오래된 안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루를 다시 씌워 제자리에 두고 돌아오는 길에 민준은 자꾸 그 눈 구멍을 떠올렸다. 뚫려 있는 두 개의 구멍이 마치 뭔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비어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부터 꿈이 시작되었다.
꿈속에서 민준은 하회마을 안길을 걷고 있었다. 밤이었고, 돌담 위로 달빛이 깔렸다. 골목은 낮에 걸었던 것과 같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소리였다. 낮에는 억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가 있었는데 꿈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발이 흙에 닿아도 소리가 없었다. 자신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강 쪽을 향해 걸었다. 강변에 이르자 물이 보였다. 낙동강은 흐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소리가 없었다. 강물이 마치 고체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부용대 절벽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서 있었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거운 무언가를 마음속에 남겼다. 꿈은 그 장면에서 끊겼다.
민준은 새벽 두 시에 깨어났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 너머에서 강물 소리가 들렸다. 늘 들리던 그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소리가 조금 달랐다. 낮고 고른 흐름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는 것처럼. 민준은 이불을 끌어당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흘째 아침, 민준은 숙소 주인 이씨 할머니에게 마을에 혹시 쓰지 않는 제당이나 신당이 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밥상을 차리다가 손을 멈추고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뭔가를 재는 것 같은 눈이었다.
"왜요?"
"연구 때문에요. 별신굿 관련 공간 조사를 하고 있어서요."
할머니는 잠시 있다가 다시 밥상을 차렸다.
"없어요. 다 없어졌어요."

그 말투가 이상했다. 없다는 말이 없어졌다로 바뀌었고, 그 뒤에 말이 없었다. 민준은 더 묻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당 장독대 위에 낙엽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아침 햇살이 거기에 닿아 있었는데, 낙엽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바람이 없는 날이었다.
오후에 민준은 강변으로 나갔다. 나룻배가 매여 있는 선착장 근처를 걷다가 강을 건너 부용대 쪽으로 가는 줄을 당겨 나룻배를 불렀다. 혼자 강을 건너는 것은 규정에 맞지 않았지만 뱃사공이 건너편에 있었고 민준이 손을 흔들자 건너왔다. 민준은 부용대 절벽 아래까지 걸어올라갔다. 소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자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낙동강이 마을을 품고 태극 모양으로 굽어 흐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초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 중앙에서 가지를 뻗고 있었다.
민준은 절벽 가장자리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름다운 동시에 이상했다. 마을이 너무 조용했다.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늦가을이라 관광객이 적은 탓이려니 했지만, 그래도 마을 안에 사람이 사는 곳인데 연기 하나,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민준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때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였다. 민준은 돌아보았다. 소나무 사이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도 없었다. 그런데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민준이 숙소로 돌아오자 이씨 할머니가 마당에 서 있었다. 민준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민준은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다가 자신의 카메라를 꺼내 오늘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강변 사진, 부용대 올라가는 길 사진, 그리고 절벽 위에서 찍은 마을 전경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을 넘기다가 민준은 손이 멈췄다.
절벽 위에서 찍은 마을 전경 사진 가운데 하나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마을 안길 어딘가, 느티나무 바로 옆에 사람이 서 있었다. 민준이 그 자리를 바라보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사진에는 있었다. 형체가 선명하지 않았다. 사람 크기의 무언가가 느티나무를 등지고 서 있었는데,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두웠다. 그림자가 진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 사진은 오후 햇빛이 충분히 드는 시간대였다. 민준은 사진을 확대했다. 확대할수록 형체가 더 불분명해졌다. 얼굴 부분은 그냥 어두운 타원이었다. 그리고 그 타원 안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 개의 밝은 점이 있었다.
민준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런 사진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설명이 가능했다. 마을에 주민이 있고, 그 주민이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었을 뿐이다. 얼굴이 어두운 것은 빛의 각도 때문이고, 밝은 점은 안경 반사이거나 눈의 흰자위였을 수 있다. 민준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섯째 날 새벽, 민준은 꿈을 다시 꾸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꿈속에서 민준은 자료관 창고 안에 있었다. 불이 꺼진 창고였고, 선반 위의 물건들이 어둠 속에 흐릿하게 있었다. 민준은 반쪽짜리 탈이 있던 선반 앞에 서 있었다. 자루가 걷혀 있었다. 탈이 그대로 있었다. 눈 구멍 두 개가 정면을 향해 있었다. 민준은 그 탈을 바라보았고, 탈도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탈에서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눈 구멍 안이 비어 있지 않았다. 구멍 안쪽에 무언가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민준은 꿈속에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탈이 선반 위에 그대로 있으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민준이 앞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눈 구멍이 점점 커졌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민준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그 두 감각이 동시에 있었다. 꿈은 눈 구멍 바로 앞에서 끊겼다.
민준은 땀에 젖어 일어났다. 새벽 네 시였다. 방 안이 어두웠다. 창밖의 강물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오늘은 그 소리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강물 소리 안에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낮고 규칙적인 소리였다. 민준은 귀를 기울였다. 숨소리였다. 아니면 숨소리와 흡사한 무언가였다. 방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창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민준은 전등을 켰다. 방 안은 비어 있었다. 소리는 멈추었다.
민준은 그날 오전 자료관에 다시 갔다. 탈을 다시 보고 싶었다. 반쪽짜리 탈이 있던 선반으로 갔는데, 자루가 없었다. 탈이 그대로 노출된 채 선반 위에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루가 씌워져 있었다. 직원에게 물었다.
"저 탈 자루 누가 벗겼어요?"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루요? 저 탈에 자루가 씌워져 있었나요? 저는 원래 저렇게 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민준은 자신이 분명히 자루를 씌워두었다고 말했다.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모르겠다고 했다. 민준은 탈 앞에 섰다. 탈은 그대로였다. 눈 구멍이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눈 구멍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시선을 고정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그 구멍 안에 시선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민준은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서둘러 창고를 나왔다.
바깥에 나오니 마을 안길에서 류씨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민준을 보더니 멈추어 섰다.
"얼굴이 안 좋네요."

민준은 잘 못 잔 것 같다고 했다. 노인은 민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탈 보셨어요?"
민준은 자료관에 있는 오래된 탈을 보았다고 했다.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거 오래 보지 마세요.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더더욱."
민준이 왜냐고 묻자 노인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탈은 얼굴입니다. 그런데 그 탈은 다릅니다. 그건 누가 쓴 탈이 아니라, 탈이 쓴 탈이에요."
민준은 그 말의 의미를 물으려 했지만 노인은 이미 돌아서서 걷고 있었다.
탈이 쓴 탈.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섯째 날, 민준은 자신의 메모장을 꺼내 이번 출장 동안 이상하게 느꼈던 것들을 적었다. 꿈, 소리, 사진, 류씨 노인의 말, 이씨 할머니의 태도. 하나씩 나열하고 보니 각각은 설명이 가능했다. 꿈은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고, 소리는 강물 소리가 밤에 더 크게 들리는 것이고, 사진은 광각 렌즈의 왜곡이거나 마을 주민이었고, 노인의 말은 민속학적 금기 전승이었다. 그런데 하나씩이 아니라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것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민준은 그 방향이 어디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오후에 민준은 마을 중심부의 느티나무 앞에 섰다. 수백 년 된 고목이었다. 줄기 아래쪽에 금줄이 쳐져 있었고, 금줄에는 오래된 흰 천 조각들이 묶여 있었다. 천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민준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잎이 거의 다 진 가지들이 회색 하늘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때 민준은 자신이 사진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 나무 바로 옆에 그 형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민준이 서 있는 자리가 정확히 그 형체가 서 있던 자리였다.
민준은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흙이었다. 낙엽이 쌓인 흙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발바닥 아래에서, 땅 안쪽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진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온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그냥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느낌이었다. 민준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민준은 결정했다. 내일 아침 일찍 짐을 싸서 떠나기로. 연구는 자료 사진과 녹음으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다.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에서 오는 느낌인지는 몰랐지만, 그 느낌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며 민준은 일찍 누웠다. 강물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오늘 조용했다. 민준은 조금 안심했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잠을 청했다.
새벽에 무언가가 민준을 깨웠다. 소리가 아니었다. 빛이었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달빛이라고 하기에는 방향이 이상했다. 창문은 마당 쪽을 향해 있었고, 마당에서 빛이 오고 있었다. 민준은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마당에 누군가 서 있었다.
장독대 앞이었다. 사람 크기의 형체가 서 있었다. 빛은 그 형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고, 형체는 그냥 서 있었다. 달빛이 흐릿하게 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형체는 민준이 있는 창문 쪽을 향해 서 있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였다. 보이는데 알아볼 수 없었다. 형체의 얼굴 자리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 개의 구멍이 있었다.
민준은 숨을 멈추었다.
구멍 안이 비어 있지 않았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마당은 비어 있었다. 장독대만 줄지어 있었다. 달빛이 장독 위를 비추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민준은 창문에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면서 발뒤꿈치가 방바닥 위의 무언가를 밟았다. 딱딱한 것이었다. 내려다보았다.
나무 조각이었다. 검게 옻칠된 나무 조각이었다. 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민준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자료관 창고에서 보았던 반쪽짜리 탈의 나머지 반쪽이었다. 합치면 온전한 얼굴이 되는 나머지였다. 눈 구멍은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 모양이 조각되어 있었지만 뚫려 있지 않았다. 막혀 있었다.
민준은 그 조각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방 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방바닥에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민준은 짐을 쌌다. 이씨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민준의 얼굴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나무 조각을 가져가야 할지 두고 가야 할지 몰랐다. 결국 자료관에 들러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직원은 조각을 받아 들고 말했다.
"아, 이거 어디서 나왔어요?"
민준은 창고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직원은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민준은 직원을 따라가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직원이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거 딱 맞네요."
민준은 그 말을 듣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알았다.
버스를 타고 안동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민준은 창밖으로 강을 바라보았다.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감아 돌며 뒤로 멀어졌다. 부용대 절벽이 보였다. 절벽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버스가 완전히 마을을 벗어나 강변 도로를 달릴 때, 민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나무 조각을 쥐었던 오른손이었다. 손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없었다. 조각은 직원에게 건네주었으니까.
그런데 손바닥 한가운데에 뭔가가 남아 있었다. 나무 조각의 결이 손바닥에 눌린 자국이었다. 흔한 일이었다. 단단한 것을 쥐면 자국이 남는다.
민준은 손바닥의 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눈 모양이었다.
막혀 있어야 할 눈이, 손바닥 위에서 뚫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