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의 것
AI AI가 만든 창작 픽션입니다(음성·이미지도 AI 생성). 실제 사건·인물·단체·장소와 무관합니다.

민준이 경주에 내려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지 석 달째,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대학 동기 하나가 경주 황리단길 근처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으니 한 달쯤 와서 쉬다 가라고 연락해왔다. 숙박비 대신 간단한 청소와 체크인 업무를 도와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민준은 고민할 것도 없이 짐을 꾸렸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그 두 가지가 그를 남쪽으로 끌어당겼다.
게스트하우스는 대릉원 담장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능선처럼 완만하게 부푼 고분들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처음 며칠은 그 풍경이 그저 이국적으로 아름다웠다. 봄볕이 잔디 위에 고르게 깔리고, 관광객들이 고분 사이 오솔길을 산책하는 모습은 평화롭기까지 했다. 동기 재현은 성격이 느긋해서 민준에게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았다. 오전에 체크인 손님이 없으면 민준은 노트북을 들고 대릉원 안쪽 벤치에 앉아 빈 화면을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다.
문제는 사흘째 밤부터 시작되었다. 자려고 누우면 창밖에서 낮고 균일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경주의 봄바람은 서울보다 부드럽고, 고분 주변에서 불어오는 공기는 특유의 흙냄새를 머금고 있었으므로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리는 바람이 잦아든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낮게 뻗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사람의 목소리처럼 굴곡지는 것 같기도 했다. 민준은 창가에 서서 귀를 기울였지만, 고분들은 달빛 아래 아무 말 없이 솟아 있을 뿐이었다. 어둠 속의 능선은 낮보다 훨씬 크고 묵직하게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가 등을 구부리고 엎드려 있는 것 같았다.
재현에게 물어보니 그는 픽 웃으며 말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 적응되면 아무것도 안 들려. 수천 년 된 무덤 옆에 사는 거잖아, 원래 좀 그런 거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민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닷새째 되던 날, 민준은 처음으로 대릉원이 문을 닫은 뒤의 시간을 경험했다. 황리단길 쪽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담장을 따라 걸었는데, 관람 종료 이후의 대릉원은 낮과는 전혀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담 너머로 보이는 고분들은 조명도 없이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담장 안쪽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민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려 했지만, 담장 중간쯤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담 안쪽, 가장 큰 고분 아래 평평한 잔디밭에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민준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비볐다. 형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옷인지 몸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어둠과 색이 비슷했고,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민준 쪽을 향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민준은 빠른 걸음으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재현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민준은 혼자 마루에 앉아 물을 마셨다. 취객이겠지, 아니면 눈의 착각이겠지, 그런 생각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날 밤 잠이 들기 전, 창 너머 고분 방향에서 다시 그 소리가 들렸을 때, 민준은 그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리는 사람이 낮고 고르게 무언가를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언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리듬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노래의 박자처럼, 혹은 반복되는 이름처럼.

일주일이 지났다. 민준은 낮에도 대릉원을 찾아갔다. 이제 그곳은 그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고분 사이를 걷는 것을 관찰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노인들이 천천히 걸었다. 고분들은 그 모든 것을 아무 반응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민준은 가장 큰 고분, 흔히 대릉이라 불리는 쪽의 경사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풀이 균일하게 자라 있었다. 그런데 경사면 중간쯤, 이상하게 풀이 자라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마치 무언가가 오랫동안 그 위에 놓여 있다가 최근에 치워진 것처럼 흙빛이 드러나 있었다. 민준은 그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재현이 뒤에서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 저거. 거기 며칠 전까지 돌 하나 있었어. 크고 납작한 거. 관리 직원이 치웠나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 자리만 풀이 안 자랐냐고 물으니 재현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돌이 오래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재현의 말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합리적이지만 뭔가가 빠져 있었다.
그날 밤 민준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대릉원 안에 있었다. 낮처럼 밝지도 않고 밤처럼 어둡지도 않은, 회색빛 시간 속이었다. 고분들은 평소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고, 잔디는 발밑에서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민준은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가장 큰 고분 앞에 이르렀을 때, 경사면 중간의 그 자리, 풀이 없는 흙빛 직사각형 앞에 누군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흰 저고리 차림이었다. 민준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돌아가려 했지만, 꿈 특유의 저항이 몸을 붙잡았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릎 꿇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민준은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방은 어두웠다. 창문 너머에는 고분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은 더 또렷했다. 민준은 이불을 끌어당겨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이불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음날 민준은 혼자 대릉원을 더 꼼꼼히 돌아다녔다. 관람객들 사이를 걸으면서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고분 사이 오솔길 중 하나, 관광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북쪽 구석에 낡은 나무 팻말이 하나 꽂혀 있었다. 공식 안내판과는 다른 글씨체였다. 페인트가 반쯤 벗겨져 있어서 읽기 어려웠지만 민준은 몸을 숙여 읽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길로는 해 진 뒤에 들어오지 마시오. 그 아래에는 날짜처럼 보이는 숫자들이 있었는데 페인트가 너무 많이 지워져 알아볼 수 없었다. 민준은 그 팻말을 사진 찍어두었다. 관리 사무소 직원에게 저 팻말이 언제 세워진 건지 물었더니 직원은 팻말을 보더니 잠깐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래된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민준의 신경을 건드렸다.
열흘이 지난 밤, 민준은 결국 담장 밖을 다시 걸었다. 재현은 황리단길 쪽 지인과 술자리가 있다며 일찍 나갔다. 민준은 혼자 저녁을 먹고 천천히 담장을 따라 걸었다. 그날은 구름이 많아서 달빛도 거의 없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담 안쪽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민준은 걸으면서 담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자리, 사흘 전 형체를 보았던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담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였다. 잔디 위를 걷는 소리는 딱딱하지 않고 눌리는 소리여서 더 또렷하게 들렸다. 민준은 걸음을 멈췄다. 발소리도 멈췄다. 민준이 다시 걸으면 발소리도 다시 났다. 민준이 멈추면 발소리도 멈췄다. 완벽하게 동조하고 있었다.
민준은 그 자리에 서서 담 안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담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잔디밭에 무언가가 있었다. 서 있었다. 지난번에 보았던 그 형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리가 더 가까웠다. 민준은 그것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키가 컸다. 옷이 아니라 몸 자체가 어두운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민준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없었다. 아니, 얼굴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어둠이 뭉쳐서 얼굴 모양을 만든 것 같았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것이 민준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응이 없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거기 있을 것처럼.

민준은 뒤로 물러서다가 발이 엇갈려 넘어질 뻔했다. 그는 돌아서 빠르게 걸었다. 뛰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뛰었다. 게스트하우스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와서도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재현에게 전화하려다 그만뒀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담 너머에 어두운 형체가 서 있었다고? 밤에 고분 옆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고? 재현은 또 그러겠지. 적응되면 아무것도 안 들려, 라고.
민준은 그날 밤 자신이 찍어둔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풀이 없는 직사각형 자리. 낡은 팻말. 그리고 그가 형체를 처음 보았던 날 담 너머를 찍어둔 사진. 처음 찍을 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잔디밭 한가운데 희미하게 세로로 긴 그림자가 찍혀 있었다.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 광원이 없는 자리였다. 민준은 사진을 확대했다. 그림자는 분명히 사람의 형태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민준을 더 오래 붙잡은 것은 사진 아래쪽, 담장 바로 옆 잔디밭이었다. 거기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분명하게 눌린 잔디 위의 발자국이었다. 안쪽에서 담장을 향해 걸어온 발자국이었다. 그리고 발자국은 담장 바로 앞에서 끊겼다. 담장 바깥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담장을 넘은 흔적도 없었다. 그냥 거기서 없어졌다.
민준은 노트북을 열었다. 빈 화면이었다. 경주에 내려온 이후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타이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하는 것처럼 썼다. 형체에 대해, 소리에 대해, 발자국에 대해.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등장인물이 생겨났다. 이름이 없는 사람이 대릉원 담장 밖을 혼자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안을 들여다보았고, 안에 있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민준은 계속 썼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꽤 많이 썼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민준은 멈췄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그것은 담장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담장 안에서 보고 있었다.
민준은 그 문장을 자신이 쓴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이 타이핑한 것인데, 그 문장이 어떤 의도로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창밖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눈은 저절로 창 쪽으로 향했다. 고분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이제 소리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소리가 없는데 공기가 달랐다. 방 안의 공기가. 민준은 창을 열어두지 않았는데도 흙냄새가 났다. 오래된 흙, 오래 닫혀 있던 공간의 냄새.
다음날 아침, 재현이 커피를 내리면서 말했다. 어제 밤에 일찍 들어왔어? 내가 새벽에 들어왔는데 네 방에 불이 켜져 있더라. 민준은 응, 글 쓰다가 늦게 잤어, 하고 대답했다. 재현은 오, 드디어 쓰기 시작했구나, 하고 웃었다. 민준도 웃었다. 그런데 재현의 다음 말이 이상했다. 어, 그런데 창문은 왜 열어뒀어? 추웠을 텐데. 민준은 잠깐 멈칫했다. 나 창문 안 열었는데,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피곤해서 그랬나봐, 라고 했다.
그날 오후 민준은 다시 대릉원에 갔다. 이번에는 입구 근처 관리 사무소 옆 작은 자료실에 들어가봤다. 대릉원과 고분들의 역사를 설명하는 패널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민준은 천천히 읽었다. 신라 왕들의 무덤들, 수많은 껴묻거리들, 발굴 과정. 그중 한 패널이 눈을 잡아당겼다. 대릉원 일대에서 발굴 도중 기록되지 않은 부장품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현재까지 주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일부 고분은 내부 구조상 단일 피장자가 아닌 복수 인원의 안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민준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복수 인원. 확인되지 않았다.

자료실을 나오면서 민준은 입구 쪽 방명록을 무심코 넘겨보았다. 오래된 방명록이었는데 맨 뒤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이름도 날짜도 없는 자리에 누군가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어놓았다. 저는 여기서 제 이름을 불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 번 들었습니다. 민준은 방명록을 닫았다.
그날 밤,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과 달랐다. 낮고 균일한 읊조림이 아니었다.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민준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었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민준, 이라고 불렀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지 방향이 없었다. 창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었고 방 안에서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공기 안에 있었다. 민준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어둠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세 번째로 들렸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작은 소리로, 거의 숨소리처럼. 네, 라고.
그 뒤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도 없었고 거리의 소음도 없었다. 민준은 그 침묵이 응답이 오기 전의 침묵인지, 아니면 이미 무언가가 끝난 뒤의 침묵인지 알 수 없었다. 잠이 들기 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민준은 이틀 뒤 서울로 돌아갔다. 재현에게는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재현은 그래, 아쉽다, 하고 가볍게 말했다. 민준은 짐을 싸면서 창문을 마지막으로 한 번 열었다. 대릉원의 고분들이 아침 햇살 아래 평화롭게 있었다. 관광객 몇이 벌써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고분 경사면 아래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민준은 창을 닫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 민준은 경주에서 쓴 파일을 열었다. 자신이 새벽에 썼던 그 글. 읽어보니 생각보다 잘 쓰여 있었다. 문장들이 낯설 만큼 또렷했다. 그런데 파일의 분량이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마지막으로 저장한 뒤에도 내용이 더해진 것 같았다. 마지막 몇 단락은 민준이 쓴 기억이 없었다. 문체도 달랐다. 훨씬 오래된 문장들처럼 읽혔다. 그리고 그 단락들 안에는 민준이 경주에서 경험한 것들이, 민준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 아주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그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것을 들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