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의 눈들
AI AI 生成の創作フィクションです(音声・画像も AI 生成)。実在の出来事・人物・団体・場所とは無関係です。

사진작가 민준은 감천문화마을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십일월 중순, 부산의 겨울이 막 코끝을 간지럽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감천항 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짭조름하면서도 차가웠고, 산비탈을 빽빽하게 채운 파스텔 빛 집들은 그 바람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다. 민준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이 마을의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잡지에 실린 사진 속 마을은 너무 예뻐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 사진보다 훨씬 작고, 훨씬 낡고, 훨씬 조용했다.
민준이 묵기로 한 곳은 마을 안쪽 골목 깊숙이 자리한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주인 할머니는 일흔은 넘어 보였는데, 그의 짐을 보며 "사진 찍으러 왔나" 하고 물었다.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방 열쇠를 내밀었다. 방은 좁고 낮았다. 작은 창문 너머로 계단식 골목길이 내려다보였고, 저 아래로 항구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민준은 배낭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짠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첫날은 순조로웠다. 민준은 아침 일찍 일어나 좁은 골목들을 누볐다.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은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어떤 골목은 갑자기 막다른 벽에 부딪혔고, 어떤 골목은 예고도 없이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평지로 나왔다. 민준은 그 미로 같은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길을 잃어도 잃은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어딘가로 인도되는 것 같은 느낌. 벽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물고기, 아이, 빛나는 별, 웃는 얼굴들. 그는 셔터를 수백 번 눌렀다. 오후가 되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을 때, 노트북 화면에 펼쳐진 사진들은 하나같이 좋았다. 빛이 좋았고, 구도가 좋았고, 무엇보다 마을이 좋았다.
이틀째 저녁, 민준은 한 가지를 알아챘다. 마을 관광 안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계단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뒤편 담장 끝에서 시작되는, 난간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좁은 돌계단이었다. 낮에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계단 위쪽으로 몇 채의 집이 더 있는 것이 보였다. 지도에 없는 구역이었다. 할머니에게 물으니 할머니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거기는 사람 안 살아. 오래됐어. 올라가 봤자 볼 것도 없다"고 했다. 민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 좁은 창문으로 그쪽을 바라보다가 희미한 불빛 하나가 그 계단 위 어딘가에서 깜박이는 것을 봤다. 그는 처음에는 이웃 집의 불빛이 반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빛은 반사처럼 일정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손에 든 것처럼, 조금씩 움직였다.
사흘째 되던 날 오후, 민준은 결국 그 계단을 올랐다.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마을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래쪽 골목에서 들리던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 그 모든 것이 계단을 오를수록 멀어졌다. 대신 바람 소리가 커졌다. 감천항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계단과 계단 사이를 쑤시며 지나갔다. 민준의 귀에는 그 바람이 어딘가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계단 끝에 이르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를 둘러싸고 세 채의 집이 있었다. 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창문에는 판자가 덧대어져 있었다. 담장에는 벽화가 없었다. 아래쪽 골목의 울긋불긋한 색깔과는 달리, 이곳의 벽은 오랜 습기와 소금기에 절어 회색과 검정 사이 어딘가의 빛깔이었다. 민준은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눌렀다. 그때 세 채 중 가운데 집의 판자 창문 틈에서 무언가를 봤다. 아주 잠깐이었다. 눈이었다.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것이 판자 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준은 심장이 한 박자 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다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판자와 판자 사이의 어둠뿐이었다.

민준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빛의 착각이다. 오래된 집이라 목재가 뒤틀려서 그 형태가 눈처럼 보인 것이다. 그는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열어 그날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공터의 사진들은 썩 좋지 않았다. 구도도 어색하고, 빛도 나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셔터를 누른 바로 그 순간의 사진을 열었을 때 그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판자 창문 틈 사이, 어둠 속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형태. 둥글고, 밝고, 그를 똑바로 향하고 있는 것. 민준은 사진을 최대로 확대했다. 확대할수록 픽셀이 뭉개졌지만, 그 형태는 지워지지 않았다.
넷째 날 아침, 민준은 마을을 돌아다니다 한 노인을 만났다. 칠순 가까이 된 남자 노인으로, 마을 어귀의 낮은 담장에 걸터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준이 말을 걸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잡담을 나눴다. 민준은 조심스럽게 지도에 없는 계단과 그 위의 집들에 대해 물었다. 노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받아들이듯 느슨해지는 것이었다.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 집들은 육이오 전쟁 피란민들이 처음 터를 잡은 곳이라고.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집들이라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았는데, 한 이십 년 전쯤 마지막 주민이 떠난 뒤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민준이 왜냐고 묻자 노인은 잠시 바다를 바라봤다가 말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들 이상해졌거든. 마지막에 살던 할머니도, 그 전에 살던 가족들도. 이상해져서 떠났어. 아니면 이상해져서 그냥 거기 있거나." 민준은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 멈췄다. 노인이 다시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날 오후부터 민준은 이상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한 것을 보기 시작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 낯선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관광객도, 주민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은 골목 모퉁이에 서 있거나,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벽화 앞에서 아무 표정 없이 서 있었다. 민준이 카메라를 들어 그쪽을 향하면 그들은 어느새 없었다. 골목을 돌면 사라졌고, 계단 위를 올려다보면 아무도 없었다. 민준은 처음에는 자신이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도 잘 못 잤고, 먹는 것도 불규칙했으니까. 그러나 저녁 무렵,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다가 그 생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벽화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 그 사진 속 벽화 한쪽 구석에 사람의 윤곽이 찍혀 있었다. 민준이 셔터를 누르던 순간,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는 있었다.
닷새째 밤, 민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문 너머로 그 계단 위쪽을 자꾸 바라봤다. 불빛은 이번에도 있었다. 어젯밤에도 있었고, 그제 밤에도 있었다. 민준은 자신이 처음부터 매일 밤 그 불빛을 봤는지, 아니면 최근에 생긴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불확실함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새벽 두 시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를 들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두웠다. 손전등을 들고 올랐는데, 계단 돌 표면이 낮에 보던 것과 달랐다. 이끼가 짙게 깔려 있었고, 군데군데 발자국처럼 보이는 흔적들이 있었다. 신발 바닥의 무늬가 찍힌 것이 아니라, 발가락과 발뒤꿈치의 형태가 그대로 찍힌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 맨발의 흔적들이 계단 위쪽으로,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공터에 올라서자 불빛은 없었다. 세 채의 집은 낮에 봤던 것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낮에는 닫혀 있던 가운데 집의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한 틈. 그 틈 사이로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민준은 손전등 빛을 그 틈에 비췄다. 빛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벽도 안 보이고, 바닥도 안 보이고, 그냥 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집 안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문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민준은 손을 뻗어 문을 조금 더 밀었다. 그 순간, 안쪽에서 무언가가 손전등 빛을 반사했다. 눈이었다. 눈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높이도 제각각이었다. 서 있는 것, 앉아 있는 것,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것.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었다.
민준은 뒤로 물러났다. 한 발, 두 발. 발이 계단 끝에 걸렸다. 그는 균형을 잡으며 손전등을 놓쳤다. 손전등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빛이 이리저리 튀었다. 어둠 속에서 민준은 계단을 더듬어 내려갔다. 무릎이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고, 손바닥이 이끼 낀 돌 위를 긁었다. 아래쪽 골목 가로등 불빛이 보일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로 달려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불을 모두 켰다. 손바닥에 피가 났다. 무릎도 욱신거렸다. 민준은 침대에 앉아 숨을 골랐다. 한참 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공터에서 찍은 사진은 없었다. 문이 열린 것을 찍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저장된 사진이 있었다. 자신이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이었다. 계단 위, 공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은 앵글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골목과 집들과 가로등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손전등을 들고, 홀로 내려가는 남자. 민준 자신이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짐을 쌌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뭔가를 끓이고 있었다. 민준이 일찍 떠난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 잘 가." 민준은 잠깐 망설였다가 물었다. "할머니, 그 위 집에 사람 있어요? 밤에 눈이 보였어요. 여러 개." 할머니는 한동안 냄비를 저었다. 그러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사람들은 다 오래전에 떠났어. 그런데 뭔가 남아 있기는 해." 민준은 뭐가 남아 있냐고 물으려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 전에 말했다. "보는 것들이야. 그것들은 원래 거기 있었어. 사람들이 와서 사는 동안도 거기 있었고,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거기 있었어. 이상해지는 건 사람들이야. 오래 보이면."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다시 냄비 속을 들여다봤다. 대화가 끝났다.
민준은 마을 어귀를 빠져나오면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산비탈을 가득 채운 파스텔 빛 집들, 계단식 골목,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창문들.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이제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을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주머니 속 카메라를 꽉 쥐었다. 카메라 속에는 그가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이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삭제 버튼으로 가지 않았다. 그냥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었다.
부산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민준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세수를 했다. 물을 닦으면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민준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이 깜박이는 타이밍이 자신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주 조금. 0.1초쯤 늦게 깜박이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봤다. 이번에는 같았다. 정확히 같았다. 민준은 크게 숨을 내쉬고 화장실을 나왔다.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다시는 그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민준은 한동안 카메라를 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편집 마감이 다가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열고 카메라를 연결했다. 사진들을 하나씩 넘겼다. 첫날의 골목, 벽화들, 계단 위의 풍경. 사진들은 좋았다. 그는 고르고 또 골라서 열두 장을 추렸다. 마지막 사진은 열지 않았다. 폴더 안에서 파일명만 보였다. 그는 마우스 커서를 그 파일 위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결국 열지 않고 폴더를 닫았다. 잡지사에 열두 장을 보냈다. 편집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사진이 좋다고, 마을의 분위기가 잘 담겼다고, 다음 호에 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물었다. 사진 두 번째 장, 골목 계단 위쪽을 찍은 사진에 사람이 서 있는데, 모델 사용 동의서가 필요하냐고. 민준은 그 사진을 다시 열었다. 계단 위쪽. 그가 찍은 것은 계단과 하늘과 전선뿐이었다. 그런데 계단 꼭대기, 가장 어두운 부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안 보였다. 그냥 서 있는 형태. 그것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찍을 때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생긴 것인지.
민준은 편집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고, 지나가다 찍힌 것 같다고. 그 답장을 보내고 그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높은 건물들, 차들, 사람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감천 계단에서 긁힌 자리는 이미 아물었다. 흉터조차 없었다. 그는 무릎을 만졌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흔적이 없었다. 민준은 핸드폰을 들어 감천문화마을을 검색했다. 사진들이 나왔다. 파스텔 빛 집들, 골목, 계단, 벽화들. 그는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겼다. 그러다 멈췄다. 누군가 올린 관광 사진 속에, 마을 전경을 찍은 사진 속에, 산비탈 꼭대기 쪽, 지도에 없는 그 구역에 해당하는 자리에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창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작았다. 민준은 화면을 확대했다. 확대할수록 뭉개졌다. 그러나 그 뭉개진 픽셀들 속에서도, 무언가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골목을 오르는 사람들을 향해, 늘 거기서 내려다보고 있었을 그것들이.
민준은 핸드폰을 뒤집어 화면이 보이지 않게 책상 위에 엎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북 화면 속, 아직 열지 않은 마지막 파일의 파일명을 바라봤다. 파일명에는 날짜와 번호만 있었다. 그가 찍지 않은 사진. 계단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그의 카메라로 찍힌 사진. 그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커서가 파일 아이콘 위에 올라갔다. 그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파트 밖의 소리들, 도로의 소음, 옆집의 기척, 그 모든 것이 일시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화면 속 커서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클릭하지 않았다. 클릭할 수 없었다. 내일 하자고 생각했다. 내일, 밝은 낮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러나 그가 그 파일을 다시 연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 파일을 열려고 한 것이 사흘 뒤였다. 그런데 사흘 뒤 노트북을 열었을 때, 그 파일은 없었다. 폴더 안에서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새로운 파일이 하나 생겨 있었다. 생성 날짜는 바로 그날 새벽 세 시였다. 민준이 자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는 그 파일을 열지 않았다. 노트북을 덮었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밤은 밝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밝았다. 민준은 한동안 그 밝음을 바라봤다. 그러다 자신이 언제부터 창가에 서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을 마신 기억은 있었다. 노트북을 덮은 기억도 있었다. 그런데 창가로 걸어온 기억이 없었다. 그냥 여기에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아래 도로를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창문에 이마를 기댄 채, 얼마나 오래 서 있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