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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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가 경주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게였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서울의 공기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냄새가 났지만, 경주의 공기는 오래된 돌의 냄새가 났다. 지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석 달 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뒤, 그녀는 혼자서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딘가 오래된 곳, 자신의 상처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있는 곳으로.
숙소는 대릉원 인근의 작은 한옥 게스트하우스였다. 황리단길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안쪽, 돌담 너머로 능선이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예순 후반쯤 되어 보였고, 말수가 적었다. 지수에게 열쇠를 건네면서 딱 한 마디만 했다. "밤에는 창 열지 마세요." 지수는 그것을 여름 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눈빛이 잠깐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멈추었다는 것을,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방은 작고 깔끔했다. 창밖으로는 대릉원의 능들이 보였다. 황혼 무렵의 빛 속에서 봉분들은 짙은 초록으로 부풀어 있었다. 지수는 한동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오래전에 죽은 왕들이 저렇게 크고 둥근 언덕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작은 슬픔을 어딘가 덜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방을 풀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첫날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 지수는 대릉원 공원을 산책했다. 평일이어서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능들 사이로 난 잔디밭 길을 천천히 걸었다. 봉분들은 가까이서 보면 더욱 거대했다. 천마총 앞에서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입구 안쪽에서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땅속의 냉기, 수백 년이 아니라 천수백 년을 그 안에 가두어두었던 공기. 지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발이 저절로 멈추었다.
그날 오후, 그녀는 능 사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깐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떴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봉분 경사면 중간쯤에 사람이 서 있었다. 잔디 위에, 봉분의 완만한 경사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옷이었다.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수는 순간 어색하게 손을 들어 작게 흔들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수가 시선을 잠깐 책 위로 내렸다가 다시 올려다보았을 때, 남자는 없었다.
봉분의 경사는 가팔랐다. 그 짧은 순간에 내려오기는 불가능했다.
지수는 그것을 빛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흰 옷은 빛의 번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고, 저녁을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대릉원 봉분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냐고. 할머니는 대답 대신 수저를 내려놓고 지수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봤어요?" 지수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다시 수저를 들면서 낮게 말했다. "그냥 못 본 척하세요."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날 밤 지수는 창을 닫았다.
사흘째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지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방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창은 닫혀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습관적으로 창밖을 흘깃 보았다. 능들의 실루엣이 검게 보였다. 밤의 봉분들은 하늘보다 더 어두웠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하나의 봉분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서 있는 형체. 어제 낮에 보았던 것과 같은 자리, 같은 자세였다. 이번에는 달빛 때문에 조금 더 분명하게 보였다. 흰 옷. 긴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지수는 멈추었다. 숨을 참았다.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너무 크게 뛰었다. 형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에 옷자락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달빛이 흐르는 하늘 아래, 봉분 위의 그 형체만이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다. 지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심장 소리가 귀에서 들렸다. 한참 후,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형체는 없었다. 봉분은 그냥 어두운 언덕이었다.
그녀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넷째 날, 지수는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정신을 환기하려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들어가 신라 유물들을 보았다. 금관, 요령, 토기들. 전시 설명 문구 속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들이 있었다. 순장. 지수는 그 단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신라 귀족의 무덤에는 주인과 함께 묻힌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 있는 채로 혹은 죽여서, 무덤의 주인을 저승에서도 섬기게 하기 위해 함께 묻힌 사람들. 설명 패널 옆의 사진 속에는 발굴된 유골들이 있었다. 주인의 관 주위를 빙 둘러 누운 자세들. 지수는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마지막 표정은 어땠을까. 두려웠을까. 아니면 이미 포기한 얼굴이었을까.
박물관을 나오면서 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는 생각. 발굴된 유골들은 박물관에 왔지만, 발굴되지 않은 것들은 아직도 봉분 아래에 있을 것이다. 모든 능이 다 발굴된 것은 아니었다. 대릉원 안의 능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그 속을 열어보지 않은 채로 있었다. 닫힌 채로. 천사백 년 동안 닫힌 채로.
그날 저녁 지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저 능들 중에 아직 발굴 안 된 것도 있냐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요." 지수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그럼 그 안에 아직 사람이 있겠네요." 할머니가 잠깐 지수를 보았다. "있죠." 그러고는 덧붙였다. "아직 못 나온 사람들이요." 지수는 그 말의 뉘앙스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못 발굴된 것이 아니라 못 나온, 이라는 표현. 할머니는 이미 밥상을 치우러 가고 있었다.
다섯째 날 밤이었다. 이번에는 잠결에 소리를 들었다.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방 안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숨소리. 누군가 아주 천천히 숨을 쉬는 소리. 지수는 눈을 감은 채로 온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처럼. 하지만 이 방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눈을 뜨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숨소리는 계속되었다. 멈추지 않았다. 지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 숨소리 속에서, 그녀는 어느 순간 다시 잠이 들었다. 공포에 지쳐서, 혹은 무언가에 이끌려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은 평범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베개 옆에 흙이 묻어 있었다. 작은 흙덩이가 아니라, 가는 흙가루가 긴 선을 그리며 묻어 있었다. 마치 손가락이 지나간 것처럼.
지수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짐을 쌌다. 손이 조금 떨렸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을 나오면서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지수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벌써 가려고요?"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는 말했다. "잘됐네요. 오래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지수는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그냥 짧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골목을 나오면서 지수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대릉원의 봉분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안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 봉분들의 형태, 그 완만하고 둥근 곡선들. 그것들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의 숨결처럼 부풀어 오른 것처럼. 천천히 오르내리는 것처럼.
지수는 시선을 거두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지수는 스마트폰으로 대릉원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순장에 대한 내용들. 신라 시대 초기에는 순장이 일반적이었다는 것, 지증왕 때 금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발굴 기록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릉원 일대의 특정 봉분들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는 것, 순장된 인물의 유골 일부가 부장품과 함께 봉분 가장자리가 아닌 중심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주인의 관 바로 옆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처럼, 봉분의 입구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지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처럼.
기차는 제시간에 왔다. 지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경주 시가지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봉분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대릉원을 벗어나서도 경주 일대에는 곳곳에 봉분들이 있었다. 도로 옆에, 밭 가운데에, 주택가 사이에. 수백 개의 봉분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경주는 산 자들이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사는 도시였다.
기차가 속도를 올리면서 봉분들이 더 빠르게 지나쳤다. 지수는 피곤했다.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어두운 곳에 있었다. 흙냄새가 났다. 사방이 흙이었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다. 가까웠다. 바로 옆에서.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숨소리는 계속되었다. 규칙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꿈속에서도 지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숨소리의 주인은 오래전부터 이 어둠 속에서 이렇게 숨을 쉬어왔을 것이다. 천사백 년 동안. 혼자서. 그러다 어느 날, 닫혀 있던 봉분의 어둠 속에서 바깥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리고 빛이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기어갔을 것이다.
기차가 흔들렸다. 지수는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봉분 하나가 지나갔다. 낮은 언덕, 초록빛. 창에 그녀의 얼굴이 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반사된 얼굴 바로 뒤에, 차창 너머 멀어지는 봉분의 경사면에, 흰 형체가 서 있었다. 서서 기차를 보고 있었다. 기차가 빠르게 달렸기 때문에 형체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수는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 표정이 이상했다.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무표정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이 거기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의 얼굴처럼. 그녀는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야, 비로소 무서워졌다.

기차는 계속 달렸다. 창밖으로 봉분들이 하나씩 지나쳤다. 지수는 이제 창밖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선이 자꾸 창으로 갔다. 습관처럼. 혹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그녀는 뒤늦게 알아챘다. 베개에 남아 있던 흙가루의 선이, 잠든 그녀의 얼굴 옆을 지나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은 그녀의 뺨을, 아주 가볍게, 쓸고 지나간 흔적이었다는 것을.
기차가 터널로 들어갔다. 어두워졌다. 차창에 지수의 얼굴만 남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귀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터널이 끝났다. 빛이 들어왔다. 소리는 사라졌다.
지수는 이어폰을 꺼냈다. 귀에 꽂았다. 음악을 크게 틀었다. 창밖을 보지 않았다. 앞만 보았다. 기차는 달렸다. 경주에서 멀어졌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는데도, 음악 사이사이로, 박자와 박자 사이의 짧은 침묵 속에서, 그 숨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녀가 이제 그 소리를 듣는 법을 익혀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된 것인지도.
그것이 더 무서웠다. 경주에서 무언가가 따라온 것이 아니라, 경주에서 그녀가 무언가를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어둠 속의 숨소리가 그녀의 귀 안에 새겨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수는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음악을 더 크게 높였다. 눈을 감았다.
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그 음악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고르게,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