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 안의 열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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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이 처음 정선에 도착한 것은 늦가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굽이를 돌고 또 돌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조양강이 산허리를 끼고 흐르고, 단풍이 이미 지나간 자리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긁고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였다. 정확히는 사진작가였던 사람이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셔터를 누를 의욕을 잃은 뒤, 오래된 지인에게 빈 집 하나를 소개받았다. 정선군 고한읍 인근, 한때 탄광으로 먹고살았던 마을 어귀의 집이었다.
마을 이름은 따로 없었다. 주민들은 그냥 '아랫동네'라고 불렀고, 행정 지도에는 번지수만 남아 있었다. 한때 수백 명이 살았다는 이 동네에는 이제 일곱 가구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지붕이 내려앉거나 벽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잡초가 자라고, 유리창 없는 창틀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민준은 차에서 내려 처음 그 풍경을 보았을 때, 자신의 카메라가 오랜만에 손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를 맞이한 것은 마을 이장 노릇을 하는 칠십대 노인 최 씨였다. 등이 굽어 있었고, 목소리는 탄가루를 수십 년간 마신 사람처럼 쉬고 거칠었다. 최 씨는 빈 집 열쇠를 건네면서 딱 한 마디를 덧붙였다. "밤에는 뒷산 쪽으로 가지 마시오." 민준이 이유를 묻자 노인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갱도가 여기저기 입 벌리고 있어요. 발 헛디디면 끝이야." 그것은 합리적인 경고였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풀었다.
집은 작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장판이 들뜨고 벽지가 군데군데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으나, 보일러는 살아 있었고 수도도 나왔다. 민준은 카메라 장비를 펼쳐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로 맞은편 폐가의 창문이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창문에는 유리가 없었다. 어두운 직사각형이 텅 빈 눈구멍처럼 그쪽을 향해 있었다. 그는 셔터를 눌렀다. 처음으로 오랜만에, 진짜로 찍고 싶다는 감각이 돌아온 것이었다.
첫 사흘은 평화로웠다. 아침마다 냉기가 가득한 공기를 마시며 골목을 걸었고, 오후에는 폐가들 사이를 누볐다. 무너진 담벼락 위로 돌아온 까마귀들이 그를 내려다보았고, 탄가루가 배어든 흙길에는 오래된 신발 자국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마을 끝에는 한때 광부들이 목욕을 했다는 공동 욕탕 건물이 남아 있었는데, 창고 크기의 그 건물은 외벽에 아직도 타일이 붙어 있었고 안에서는 썩은 나무 냄새가 흘러나왔다. 민준은 그 안으로 들어가 욕조 자리를 찍었다. 물이 없는 욕조에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나흘째 밤, 민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벽 어딘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것이 낡은 집의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정이 지나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낮고 일정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그것이 바람이 아님을 알았다. 사람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아주 먼 곳에서 쇳덩이를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그는 베개를 뒤집고 눈을 감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소리는 사라졌고, 그는 깊고 불쾌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최 씨를 찾아갔다. 노인은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민준이 어젯밤 소리 이야기를 꺼내자 최 씨는 도끼를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여기서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소리 다들 듣소. 산에서 나는 거요. 갱도 안에 바람이 들어가면 그렇게 울어." 민준은 그 설명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꺼림칙함이 가시지 않았다. "예전에 사고가 있었나요? 광산에서요." 최 씨의 손이 잠깐 멈췄다. "어디서나 있었지. 여기도 예외는 아니오." 그것이 전부였다.

민준은 그날 오후 마을 뒤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고를 어기는 것이 아니라, 낮에 갱도 입구를 확인해두면 밤에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산길은 처음에는 뚜렷했지만 이십 분쯤 오르자 흐릿해졌다. 낙엽이 쌓인 비탈에서 그는 두 군데의 갱도 입구를 발견했다. 하나는 나무 판자로 막혀 있었고, 하나는 열려 있었다. 막혀 있다는 것은 말뿐이었다. 판자는 썩어서 손으로 밀면 쉽게 넘어갈 것 같았다. 열린 갱도 입구는 사람 키보다 약간 낮은 반원형이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이 끊겼다. 민준은 그 어둠을 향해 렌즈를 겨누었다.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을 확인한 것은 숙소로 돌아온 뒤였다. 노트북 화면에 갱도 안쪽 사진이 펼쳐졌다. 플래시 빛이 닿은 범위는 입구에서 불과 몇 미터였고, 그 너머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민준은 파일을 닫으려다가 멈췄다. 어둠 속 깊은 곳, 플래시 빛이 겨우 닿는 경계 바로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형체가 있었다. 사람의 실루엣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너무 길고 가늘었다. 그는 화면을 확대했다. 확대할수록 픽셀이 뭉개지면서 형체는 더 불명확해졌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무언가가 서 있었다. 민준은 그것이 갱도 벽면의 지지대나 돌출된 암석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파일을 닫았다.
엿새째 밤, 소리는 더 가까이서 들렸다. 이번에는 중얼거리는 특성이 더 뚜렷했다.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처럼 들렸다. 리듬이 있었다. 민준은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쏟아졌고, 마을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 있었는데, 그 불빛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없어야 했다. 그런데 가로등 불빛이 끝나는 지점, 어둠과 빛의 경계에 무언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민준은 눈을 비볐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지만, 그는 그것이 갑작스럽게 찬 공기를 마신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레째 아침, 민준은 마을의 또 다른 주민을 만났다.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로, 이름은 박 씨라고만 했다. 그녀는 폐가 옆 텃밭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민준을 보자마자 먼저 말을 걸었다. "사진 찍으러 오셨다죠?" 민준이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텃밭 너머 산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사람도 있었어요. 몇 년 전에. 화가라고 했는데." 민준이 그 사람은 어떻게 됐냐고 묻자 박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갔어요. 어느 날 아침에 짐도 다 두고."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민준은 그 이야기가 단순한 에피소드인지 경고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저녁 민준은 두 가지를 했다. 하나는 노트북에서 갱도 사진을 다시 열어 오래 바라본 것이었다. 어둠 속의 형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사진의 밝기를 올렸다. 명도가 높아질수록 어둠이 회색으로 변했고, 형체는 더 선명해졌다. 너무 선명해졌다. 그것은 암석이 아니었다. 다리가 두 개였고, 몸통이 있었으며, 고개가 있었다. 고개는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민준은 노트북을 덮었다. 두 번째로 한 것은 최 씨를 찾아가 이 마을에서 있었던 광산 사고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은 것이었다. 최 씨는 이번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팔십삼 년에 있었소. 열네 명이 갱도 안에서 나오지 못했어. 구조대가 들어갔는데, 셋은 찾았고 열한 명은 끝내 못 찾았소. 지금도 안에 있는 거요."
그 말이 민준의 머릿속에서 밤새 맴돌았다. 지금도 안에 있는 거요. 그는 잠들지 않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꿈을 꾸었다. 좁은 갱도를 걷고 있었다. 헬멧의 램프 빛이 흔들렸다. 앞에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같은 광부 복장이었다. 민준은 그를 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앞사람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민준은 그 얼굴을 보기 직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 세 시였다. 방 안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보일러는 작동 중이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민준은 그날 짐을 싸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는 그 감각을 나중에야 이상하게 떠올렸는데, 짐을 싸고 싶지 않다는 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마을을 돌아다녔다. 폐가들을 찍었다. 무너진 담을 찍었다. 공동 욕탕을 다시 찍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뒷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멈추려 했다.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걸었다.

갱도 앞에 섰을 때 하늘은 아직 밝았다. 오후 네 시쯤이었다. 입구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났다. 광물 냄새와 썩은 나무 냄새, 그리고 무언가 다른 냄새가 섞여 있었다. 민준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갱도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갔다. 발밑이 고르지 않았다. 두 발짝, 세 발짝. 외부의 빛이 등 뒤로 멀어졌다. 그는 열 걸음쯤 들어간 지점에서 멈췄다. 어둠이 앞을 막고 있었다. 그는 플래시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갱도 벽면과 바닥만 있었다.
그런데 플래시를 끄자 어둠 속에서 빛이 보였다. 아주 희미하게, 저 멀리 깊은 곳에서. 점 하나 같은 빛이었다. 광부의 헬멧 램프처럼 보였다. 민준은 숨을 참았다. 빛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다리가 굳었다. 빛은 계속 가까워졌다. 그리고 멈췄다. 빛과 그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거리감이 사라진다. 민준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짜냈다. "누구세요?" 메아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메아리가 사라진 뒤, 정적이 왔다.
빛이 꺼졌다.
민준은 갱도 밖으로 뛰쳐나왔다. 비탈을 내려오면서 두 번 넘어졌다. 손바닥에 피가 났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앉아 숨을 고르는 데 십 분이 걸렸다. 그는 그날 밤 최 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떠나겠다고 말했다. 최 씨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잘 생각했소." 그것이 전부였다. 민준은 짐을 쌌다. 카메라와 노트북과 옷가지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차에 짐을 실었다. 최 씨가 나와 있었다. 민준은 열쇠를 돌려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최 씨는 열쇠를 받으면서 말했다. "사진은 많이 찍었소?" 민준은 그렇다고 했다. 최 씨가 다시 말했다. "현상하고 나서 이상한 게 있으면, 그냥 지우는 게 나아요." 민준은 그 말의 의미를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백미러에 최 씨가 보였다. 노인은 차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민준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마을의 폐가들, 골목들, 공동 욕탕, 산길의 낙엽들. 좋은 사진들이었다. 오랜만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갱도 사진들을 열었다. 처음 찍은 것과 두 번째 직접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그는 천천히 파일들을 넘겼다. 그리고 한 파일 앞에서 멈췄다. 자신이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이었다. 갱도 안에서 바깥쪽을 향해 찍은 사진이었다. 즉, 갱도 내부에서 입구 방향을 향해 누군가가 찍은 것이었다. 빛이 들어오는 반원형 입구가 밝게 보였고, 그 입구 앞에 실루엣이 서 있었다. 민준 자신이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 들고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뒷모습이었다.
그는 파일 정보를 확인했다. 촬영 시각은 그날 오후 네 시 이십칠 분이었다. 자신이 갱도 안에 있던 시간이었다. 카메라는 분명히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는 갱도 안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만 사용했고, 카메라는 목에 걸려 있었다. 목에 걸린 카메라가 스스로 셔터를 눌렀을 리 없었다.
민준은 최 씨의 말을 떠올렸다. 이상한 게 있으면 그냥 지우는 게 나아요.
그는 파일을 삭제하려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런데 삭제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뒷모습 너머, 갱도 입구의 밝은 빛 속에. 최 씨가 서 있었다. 분명히 최 씨였다. 노인은 입구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민준이 갱도에 들어갈 때 최 씨는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최 씨 옆에, 최 씨보다 조금 더 작은 실루엣들이 있었다. 여럿이었다. 정확히 세기는 어려웠지만, 열 명이 넘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안을 향해 서 있었다.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파일을 삭제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날 밤 민준은 서울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려 했다. 도시의 소음이 창밖에 가득했다. 차 소리, 사람 소리, 불빛들. 그는 이불을 당겼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아주 낮고 일정한 소리가 들렸다.